아주아주 작은 풀벌레가
매일 사람이 되는 꿈을 꿉니다
이 그림책은 누드사철제본으로, 일반적인 책등을 빼고 풀빛 색실만 보이게끔 연출한 작은 책입니다. 단단한 표지의 가운데 3cm 가량의 동그란 구멍이 있습니다. 구멍을 들여다보면, 이제 막 차를 마시려고 차 도구를 준비한 아주아주 작은 풀벌레와 눈이 마주칩니다.
이제 풀벌레가 사는 곳으로 들어가 봅니다. 길쭉한 풀에 조그만 집이 달랑 붙어 있고, 동그란 창문이 보입니다. 아담한 소반에 찻잔 하나. 이불 한 채. 별일 없이 담백한 생활이 이어질 것 같은 이 공간에서, 어느 날부터인가 풀벌레는 매일매일 사람이 되는 꿈을 꿉니다. 이 이질적이고 생경한 꿈속 체험은 풀벌레의 단조로운 일상에 묘하게 설레는 파장을 일으킵니다.
풀벌레에게는 꿈 이야기를 들어주는
친구가 있습니다
“나 꿈에서 사람이 됐어.” “음, 역시 날씨가 너무 더워.”
풀벌레에게는 쇠똥벌레 친구가 있습니다. 둘은 들쥐가 나눠 준 빨간 수박 속살을 먹으며 꿈 이야기를 합니다. 따스한 볕이 머무르는 동안에 두 친구의 대화는 나른하게 이어지고. 이들의 대화 한 토막 한 토막은 평온한 정경에 윤기를 더합니다.
수박, 오이, 도라지꽃, 초록색 덩굴식물들과 나비, 방아깨비, 쇠똥벌레 들은 조선의 화가인 신사임당이 즐겨 그리던 ‘초충도’의 소재로, 이 이야기에서는 풀벌레가 속한 입체적인 세계가 되었습니다.
작가는 옛 그림 초충도에서 그림 속에 사는 풀벌레 한 마리를 떠올려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삼았습니다. 풀벌레는 꿈에서 사람이 됩니다. 그리고 어느 날 꿈속에서, 자기가 붙어사는 풀과 똑같은 냄새가 나는 식물 화분을 하나 들어 올립니다. 거기에 꼭 자기 같은 풀벌레 한 마리가 보입니다. 잔잔히 흘러가던 이야기에 긴장감이 돕니다.
어느 날, 한 사람은
벌레가 되는 꿈을 꾸었습니다
꿈속의 화분이 깨어지는 걸 계기로, 이야기는 속도감 있게 전환됩니다. 폐장 시간이 다 된 박물관에서 초충도를 보며 졸던 한 사람이 벌레가 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