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좋아하는 작가는 연구할 수가 없겠더라고. 그냥 즐겨야지.”
작가 이전에 광적인 독자 박대겸의 환희로 가득 찬 서사 예찬
딱히 선생님이 없던 저에게 창작 선생님처럼 다가와 준 수많은 작가들(과 더불어 그들의 문장을 한국어로 옮겨준 번역가들, 그중에서도 이 단편들을 쓰던 10여 년의 시간 동안 변함없이 문학적 스승이 되어준 로베르토 볼라뇨 선생님, 그리고 소설적 멘토가 되어준 마이조 오타로 선생님께 감사의 인사를 보냅니다.
-<감사의 말> 중에서
데뷔작 『그해 여름 필립 로커웨이에게 일어난 소설 같은 일』에서 작가는 수십 명의 작가와 수십 편의 작품을 호명한 바 있다. 이번 『픽션으로부터 멀리, 낮으로부터 더 멀리』에서도 그는 자신의 문학적 배후에 어떤 실루엣들이 서려 있는지 굳이 감추지 않는다. 오히려 당당히 그 사실을 드러내는데, 단순한 존경의 의미인 오마주와는 또 결이 조금 다르다. 그는 관심 있는 작가와 작품을 서사로 호출하는 데 기쁨을 느끼며, 아예 하나의 이야기(호세 알프레도를 찾아서로 빚어낸다. 그런가 하면 끝없는 독서 편력으로 흡수하다시피 체득한 문체들을 자신만의 스타일(시간의 유속로 버무리고 있기도 하다. 이처럼 선배들이 앞서 이룩한 서사와 목소리를 사랑하고 즐기는 저자의 태도에는 저들의 권위를 빌리려는 치사함이나 거만함을 엿볼 수 없다. 오직 유희만이 소설을 장악하고 있어, 독자 또한 허구적 이야기를 바라보는 작가만의 관점에 기꺼이 사로잡히게 될 것이다.
한편 작가는 이야기를 풀어놓되 필시 통합적인 결론에 이르러야 하는 전통적인 내러티브의 구조를 택하지 않는다. 그간 탐독한 서사적 역사 없이 박대겸을 설명하기 어려울 테지만, 그렇다고 그의 소설이 기성 서사에 매몰되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는 자전적 서술, 상처를 치료해 주는 감상주의적 서사, 짐짓 지성적인 제스처를 취하는 실험소설 같은 트렌드를 정중히 밀어낸다. 서사를 실험이나 문학의 이름으로 봉합하지 않기에 소설 속 이야기는 고독하고 또 자유롭다. 그로기 상태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