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남기 위해 기억까지 지워야 했던 왕할망의 이야기
《동백꽃, 울다》는 제주 4·3 사건 때 제주 사람들이 무차별적으로 겪은 폭력, 고통에 집중하여 창작한 역사동화예요. 누군가가 맞고 다치고 죽는 장면은 보는 사람마저도 고통스럽고 위축되고 불안하게 만들어요. 그런데도 굳이 그 아픈 장면을 놓지 않고 어린이 독자의 수위를 고려하고 난도를 조절해서까지 담아낸 까닭은 바로 이 지점이 제주 4·3 사건을 바로 알기 위한 첫발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아프다고 외면하고 괴롭다고 보지 않으면, 제주 4·3 사건을 바르게 알 수 없어요. 그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진상을 명확히 알고 난 뒤에야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어요. 우리가 아픈 과거, 잘못된 과거를 깊이 들여다보는 이유는 좀 더 나은 미래를 만들기 위해서예요. 그래서 《동백꽃, 울다》는 아프고 괴로운 이야기를 굳이 일부러 집중해서 다루었어요. 제주 4·3 사건의 진상도 명확히 모르면서 평화나 화해를 말하는 것은 섣부르지 않을까도 걱정되었지요. 여전히 고통 속에서 사는 제주 4·3 사건의 희생자들에게는 평화나 화해가 너무 빠르고, 너무 무거운 말이 될 수도 있으니까요.
《동백꽃, 울다》는 제주 4·3 사건의 희생자인 왕할망 고길녕과 증손녀 지서현이 함께 살면서부터 비롯되는 이야기예요. 제주 4·3 사건과 관련하여 현실 밀도감을 높이기 위해 이야기의 구성 면에서도 섬세하게 접근했습니다. 그래서 이야기의 도입에 “순사님, 정말 아무것도 몰라요. 난 빨갱이 아니에요.”라며 악몽을 꾸며 비명을 지르는 왕할망의 모습을 전면 배치한 것이지요. 또 순사니, 빨갱이니 도통 모르는 말을 쏟아 내는 왕할망이 싫거나 귀찮을 만도 한데 서현이는 왕할망과 관계를 꽤 친숙하게 맺었어요. 둘 다 그림을 좋아한다는 공통점이 있거든요. 게다가 왕할망은 서현이 덕분에 ‘그림 자서전 수업’에 다니게 되면서부터 둘은 더욱 돈독한 사이가 되지요. 서현이는 왕할망이 그린 그림을 매개로 1947년부터 1954년까지 제주에서 일어난 충격적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