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 가며
제1장 전근대기의 조선인과 아이누
에도 시대(江?時代의 표류(漂流와 표착(漂着
막부 말기부터 근대 초기의 러시아 연해주로의 조선인의 이동
제2장 근대기에 있어 조선인과 아이누
근대기 초기의 조선인 이주와 정주화
메이지기 초기 아이누 취락에 있어 조선인의 정주화
아와지시마(淡路島에서 홋카이도(北海道로의 일본인 이주와 조선인
제3장 근대기의 조선인 노무 동원과 아이누
크롬 광산과 조선인 노무자
철도부설(도미우치선富?線과 조선인 노무자
비라토리초의 매화장인허증을 둘러싼 기록과 표상
아이누 취락에 조선인 정주화 과정
강제 연행 ? 강제 노동으로부터의 도망
「오쓰넨무코(越年?」
제4장 기억 표상의 폭력
비라토리 혼마치(平取本町 공동묘지 위령비
니브타니 지구의 무연비(二風谷地?の無?碑
후쿠미쓰(福?의 공동묘지
구(? 가미누키베쓰(?上貫?別 -현 아사히旭 묘지 위령비
구(? 가나야마선(金山線 사카에역(??
호로케시(幌毛志 터널(무카와초 아즈미, 비라토리초 호로케시
호베쓰(?別 공동묘지
기억 표상의 폭력
제5장 선주민 지배와 식민지주의
아이누 인골 반환소송과 오가와 류키치(小川隆吉씨
제6장 사할린에서의 아이누와 조선인
전근대기부터 일본 통치기의 사할린(樺太
전후 사할린의 조선인과 아이누
사할린에 있어 아이누 민족과 선주민족, 조선인, 일본인의 중층성
전후 사할린 거주 한국인의 기억과 현재
제7장 전후의 아이누 민족과 조선인
조선인의 조선 민주주의 인민 공화국으로의 귀환과 아이누 민족
제주도「 4·3사건」과 재일 조선인
제8장 제국주의의 잔재 -망각의 역학
북미(北米, 중남미(中南米의 선주민과 아프리카 노예 관계에 대하여
맺으며
청취자료
야마미치 기시코(山道きし子 이시이 폼페(石井ポンぺ
가이자와 가오루 (貝澤? 아베 요시오(阿部義男 )
임원식(任元植 오충일(吳忠一
황용문(
홋카이도 선주민 아이누와 식민지의 강제적 노무 동원에 연행된 조선인은 그 전부터 교류했다. 서로 교류했던 관계에서 식민지 노동자와 원주민으로 협력 관계에 있거나 문화 혼합이나 혈연관계로서 복잡한 유대, 억압과 배제가 재생산되었다. 선주민인 아이누는 메이지 유신 후 일본으로의 동화를 강요당하고 토지나 말 이외에도 이름까지 빼앗겼다. 억압당했던 아이누인은 강제 노동자 동원으로 끌려온 조선인을 숨겨주었다. 이러한 사실은 미국에서도 인디언들이 아프리카에서 연행된 노예들을 숨겼던 일과 비슷한 맥락이다.
이동과 이주는 고대에 도래한 문화의 흔적이나 이웃 동아시아 제국과의 교류·교역과 식민지 지배와 전쟁 시기의 노동자 동원 등 역사적 요인이 크게 관여한다. 일본 문화에 있어 민족의 다양성이나 중층성을 검증하는 연구에서 홋카이도에 관한 연구로는 전시기(戰時期의 강제 노동자 동원에 대한 조사를 중심으로 한 보고서에, 홋카이도의 조선인 이동과 이주·정착화는 밝혀진 시기보다 더 이른 시기부터 이루어져 왔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른 시기부터 교류했던 한반도와 일본은 현재 위안부 문제, 징용 문제 등, 한일 문제로 골이 깊지만 홋카이도에서의 조선인 이주와 정착화의 형성 과정에서 깊은 유대를 가진 아이누 민족과 조선인에 대한 진실을 밝힘으로써 민족의 중층성을 고찰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