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해방, 그리고 귀국
상하이에서 맞은 광복 / 상하이 교민 사회의 혼돈 / 임시정부의 씁쓸한 환국 / 처음 본 조국 / 오줌싸개의 첫사랑
2. 청소년 시절
백범 암살 1: “우리 선생을 쏜 게 저놈들이다!” / 백범 암살 2: “형님은 복도 많으시오” / 성재의 길, 백범의 길 / 한국전쟁 이야기 / 피난 중학교 시절: 가장 가치 있는 것을 배우다 / 고교 악동 시절: 낭만, 정의, 사랑 / 육군사관학교 면접에서 겪은 모욕: “소위 독립운동한 집안인가?”
3. 군문에 첫발을 딛다
육사 생도 시절: 좌절과 회의를 넘어 / ‘정치적 희생양’ 조봉암 / 얼마나 오래 기다리던 결혼이었나: 1960년 육군 소위로 결혼 / 4·19 혁명: 민심 폭발의 현장을 목격하다 / ‘장군 사모님’ 이야기 / 내가 본 5·16 군사정변 1: ‘쿠데타를 주동한 세력은 도대체 누구인가’ / 내가 본 5·16 군사정변 2: 배반당한 혁명
4. 역사의 현장들
유원식 장군과의 인연: ‘다혈질 행동가’와의 만남 / 통화개혁을 주도한 유원식: “우리의 제삿날은 같다”고 하더니 / 유원식 장군의 몰락: 권력 무상의 세월 / 육사 교육장교 시절 / 초짜 정보맨의 좌충우돌 모색기 / 동백림 간첩단 사건: 중앙정보부의 존재 이유를 거스르다 / 울진·삼척 무장공비 침투 사건: “야, 이 새끼야! 왜 수가 이렇게 많아?”
5. 정치의 격랑 속에서
정치공작에 발을 담그다 / 휴머니스트 김지하 / 중앙정보부장으로 취임한 이후락: “우리는 모두 박정희교의 신도” / 이후락의 선거 공작: 김대중을 막기 위한 필사의 노력 / 이후락 실종: 홍콩에서 그와 함께 보낸 사흘 / 극비리에 진행된 7·4 공동성명: 이후락이 어느 날 영웅으로 출현하다 / 10월유신 선포: 호랑이 등에 올라탄 남과 북 / 박정희를 진노케 한 윤필용 사건: ‘유신 기수’들의 몰락
6. 운명의 날
김재규와 박 대통령의 인연: 중앙정보부장으로 임명되기까지 / 고조되는 반발, 들끓는 민심: ‘박정희 제거’의
상하이 독립운동가의 집에서 한국 정치의 중심부까지
좌절과 절망 위에 도전과 희망으로 그려낸 풍경
이종찬의 90년 삶은 대한민국의 시간과 오롯이 함께했다. 그는 1936년 독립운동가들의 망명지이자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발상지인 중국 상하이의 프랑스 조계에서 우당 이회영 선생의 손자로 태어났다. 10대 소년 시절 광복과 함께 환국해 학창 시절을 보내는 동안 그가 어려서부터 존경했던 백범의 갑작스러운 죽음, 곧이어 닥친 한국전쟁의 비극, 이승만 정권의 부정과 몰락 등 정국의 극심한 혼란을 직접 목격하는 가운데 인생의 길을 가다듬게 된다. 이때 그는 신흥무관학교를 세운 그의 조부 우당 이회영 선생의 길을 따라 참여와 행동으로 나라의 진운과 함께할 방도를 모색하며 군인의 길을 선택했다. 그렇게 군에 봉사하는 과정에서 일찍이 ‘정보’의 중요성에 눈을 떴다.
이종찬은 1965년부터 1980년까지의 격변기에 국가 정보기관에 복무하며 수많은 역사의 현장을 지켜보았다. 각종 간첩단 사건과 무장공비 침투 사건, 이후락을 중심으로 한 중앙정보부의 선거 공작과 7·4 남북공동성명, 10월유신과 윤필용 사건, 10·26 사건 등이 그것이다. 이를 통해 그는 나라의 살림살이와 위기관리, 사회 각 분야의 운영과 소통, 대립하는 입장의 조율 등이 얼마나 중요한지 실감하고 체득했다. 그 과정에서 철저하게 ‘익명의 삶’을 살았다. 그는 세대를 앞서 그렇게 익명으로 살았던 조부 이회영의 정신과 삶이 자신에게서 똑같이 나타나는 것을 깨닫고 ‘역사의 계승’에 무거운 책무감을 가졌다.
이종찬은 1980년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기회가 주어지자 이를 적극 활용해 시대와 나라가 요구하는 새로운 정치의 길에 나섰다. 제11대부터 제14대 국회까지 줄곧 서울 종로·중구 또는 종로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된 그는 민의의 엄중한 요구를 행동의 토대로 삼았다. ‘51% 의회주의자’를 자임한 그는 여당 안의 누구보다 국민 앞에 겸허했으며, 야당과의 대화에서 국회 운영의 가장 중요한 토대를 찾았다. 이 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