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현실에 접한 형이상학의 새로운 지평을 제시
기술적 합리성과 과학 전반의 승리는 인류의 주요한 질문들에 결코 해답을 제공하지 못했다. 오히려 새로운 동시에 오래된 질문과 문제들을 제기해 왔다. 21세기의 상황을 파악하고 방향을 설정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지만 여전히 우리의 일상적 시고를 형성하고 있는 철학의 중심 범주들을 새롭게 살펴보아야 한다.
『미래의 형이상학』은 주요한 형이상학적 범주들이 현재를 살피는 데 여전히 중요하다고 다시 말하는 시도로서, 현대의 곤경이 어떻게 우리에게 그 범주들을 외치게 하고 근본적으로 새롭게 비틀어 보게 하는지를 말하고 있다. 아르멘 아바네시안은 실체와 우유성, 형상과 질료, 삶과 죽음과 같은 범주를 재해석하고 재배치함으로써, 21세기의 가장 절박한 현실이 사고의 가장 근본적인 범주와 만나는 새로운 형이상학적 지평을 제시한다.
형이상학을 벗어난 생각은 없으며 형이상학적이지 않은 생각도 없다. 오히려 학계의 전문 철학자들의 경우뿐만 아니라 특히 형이상학적 범주들이 암묵적이고 성찰되지 않은 채 남아 있는 곳마다 부적절하거나 불명확한 철학적 사고가 허다하다.
후자의 예로서 디지털 기술에 대한 여러 논쟁을 보면 용어 선택에서조차 의심스러운 형이상학적 전제들을 무심코 드러낸다. ‘네트워크’와 심지어 ‘클라우드’는 모든 계산의 물질적 기반을 모호하게 만드는 그런 기만적이거나 이데올로기적인 두 개념이다.
디지털 플랫폼들 역시 물질적 자원들을 착취해야만 가능하다. (마이크로칩용 실리콘, 리튬-이온 배터리용 코발트 등의 자연, 그것들을 분해하고 조립하며 설치하는 인적 자원, 그리고 그것들을 사용하고 소비하는 모든 사람들을 착취해야만 한다.
비물질성 또는 탈물질화 이데올로기는 지금의 지배자들에게 봉사하는 안락의자 철학이다. 여기에도 다른 모든 곳과 마찬가지로 형이상학적으로 잘못된 것과 정치적으로 잘못된 것과의 연결이 있다. 나쁜 형이상학은 항상 나쁜 정치에 봉사한다. _67쪽 “탈물질화의 신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