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고래의 흼에 대하여 9
바벨 23
배신자들 39
나는 내가 의미하는 걸 말해 59
자비를 베푸시오, 샤일록 79
이 광기에는 번역을 처방한다 95
영국식 퀼트 만들기 119
번역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 137
그녀는 내 아기예요 163
성경과 옥수수빵 179
틈새의 여자들 193
침묵과 메아리 207
기계 번역 시대의 번역가 223
다시 흰 고래 243
주 251
참고문헌 263
번역은 몸을 바꾸는 일, 변신이자,
고집스러운 짐승이 인물의 자리에 들어서는 메타포다
언어의 수많은 가능성 중 하나를 선택해 한자리에 고정하려는 번역이 언제나 무언가를 조금씩 저버리고 배신하는 일이라면, 글자를 옮기는 과정에서의 손실이 불가피하다면, 번역가는 언어의 하얀 진공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까. 『흰 고래의 흼에 대하여』는 번역을 이론으로 정리하거나 번역의 정의를 규명하는 데 주안을 둔 책은 아니다. 이 책은 메타포라는 강력한 장치를 사용해 번역에 우회적으로 다가선다. 일찍이 리베카 솔닛이 일견 관련 없어 보이는 존재들을 메타포로 연결시키는 인간 고유의 사고방식이 “기계로 수행될 수 없는 인간적 생각의 본질”이라고 말했듯, 이론과 우화, 역사와 문학에서 번역의 메타포를 가져와 조각보를 짜내는 이 작업은 섬밀하고 정교한 언어 세계를 향한 믿음을 가장 ‘인간적인’ 형식과 유려한 텍스트로 보여주고 있다.
번역의 사례를 들고, 번역을 해부하고, 번역을 설명하기 위해 이 책이 가져오는 이론의 조각과 문학의 메타포 들은 나열하기만 해도 흥미롭다. 『모비 딕』의 이슈메일이 집요하게 좇은 거대한 흰 고래에서 시작해, 벤야민이 극강의 직역을 주장하며 추구한 ‘순수 언어’, 언어와 번역에 관한 가장 오래된 은유인 바벨, 나보코프가 『예브네기 오네긴』을 번역하며 쌓은 주석의 탑, 이상한 나라에서 내가 하는 말이 내가 의미하는 것인지 혼동하는 앨리스, 『베니스의 상인』의 샤일록이 필사적으로 지키려 한 기표와 기의의 결속, 세간의 웃음거리가 된 횔덜린의 ‘미친’ 번역, 앙토냉 아르토가 광기의 치료제로 처방받은 「재버워키」 번역, 에드워드 피츠제럴드가 『루바이야트』를 극도로 길들이면서 완성한 진부함의 결정체, 국제적으로 벌어진 『채식주의자』 번역의 충실성 논쟁, 여성 번역가가 옮긴 최초의 영역본인 에밀리 윌슨의 『오뒷세이아』, 진 스태퍼드의 「러브 스토리」를 번역하는 오기방 번역가와 홍한별 번역가 사이 66년의 시차…. 번역에 관한 이토록 독특하고 다채로운 화제들을